창의성이 새로운 해자다
요약
창의성 자체보다는 장기간에 걸쳐 쌓아 올린 독점적 가치나 외부 연결성이 진정한 해자가 됩니다. 웹은 복잡하고 화려한 UI보다 빠르고 간결하며, API를 통해 호출되는 '화면 없는 서비스'와 사람을 위한 UI로 양분될 것입니다.
핵심 포인트
- 진정한 해자는 창의성 자체가 아닌 장기간 축적된 가치입니다.
- 웹은 과도하게 복잡한 UI 대신, API 기반의 화면 없는 서비스가 중요해집니다.
- 사용자 경험 측면에서 간결함과 접근성이 핵심 경쟁력이 됩니다.
- AI 결과물 자체보다, 그 결과를 소비하고 유통하는 시스템에 문제가 있습니다.
그건 경쟁 해자가 아니라 붉은 여왕 효과 아닌가? 해자가 있으면 어느 정도는 가만히 있어도 됨. 데스크톱 운영체제를 장악했다면 모든 컴퓨터에 자사 사무용 소프트웨어를 넣을 수 있고, 경쟁사는 내 규칙을 따르거나 자체 운영체제를 만들어야 함. 브라우저도 무료로 배포할 수 있으니 인터넷이 어떻게 발전하는지 지켜보다 움직여도 됨.
반면 끊임없는 영감에 의존하는 건 점점 빨라지는 러닝머신과 같음. 새롭고 기발한 걸 만들면 누군가 복제하고, 그러면 또 다른 걸 만들어야 함. 잠시 멈출 여유 없이 계속 움직여야 하는 구조임.
멋진 걸 만들면, 특히 여기서는 사람들이 복제함. 정말 멋진 걸 만들면 기업이 복제함. 제대로 구현하지도 못하는 이들에게 내 작업을 그냥 넘겨준 기분이 들곤 함.
하지만 만드는 데 2년 걸리는 작업도 해자가 될 수 있음. 이를 반복할 수 있다면 한 번에 2년씩 여유를 확보하는 셈이라, 느긋하게 걸을 수 있는 더 큰 러닝머신이 됨. 어차피 경쟁력을 유지하려면 조금씩은 움직여야 함.
웹 전체를 수집하고 페이지 순위를 매기는 일은 하룻밤에 해낼 수 없음. 그런 일을 찾아 2년 동안 가치를 쌓으면 됨. 따라 하려면 남들도 그 시간을 들여야 하고, 그럴 만큼 헌신적인 사람이 있다면 채용하면 됨. 누구나 만들 수 있는 웹사이트라도 가치를 축적하거나 독점적으로 접근할 수 있는 외부 가치와 연결하면, 원래 없던 곳에 직접 해자를 팔 수 있음.
새로 만드는 것에도 기꺼이 따라올 충성도 높은 이용자층이 해자가 될 수 있음. 패스트패션처럼 빠르게 소프트웨어를 창작할 수 있게 해주는 소프트웨어 생산 체계도 마찬가지임.
이를 망친 건 소셜 미디어와 돈임. 예전에는 영감과 창의성으로 만든 가치를 직접 확보하고 그 위에 쌓아갈 수 있었고, 그것이 해자였음.
이제는 가장 강력한 홍보 채널이나 연산 자원을 가진 쪽이 작업을 가로채도 막을 방법이 없어, 공개하는 사람이 오히려 손해를 보는 일이 흔함. 사람들이 조만간 이를 깨닫고 작업을 비공개로 돌릴 것으로 보이며, 이미 그렇게 되고 있음.
평범한 웹사이트의 과도한 창의성은 창을 닫고 다른 곳에서 구매하게 만드는 이유임. 뭔가 계속 로드되면서 화면이 들썩이고, CNN처럼 모바일에서 로딩에 1분씩 걸리는 과도한 복잡함에 지쳤음.
물건 하나 사려는 사람에게는 전부 마이너스임. 방금 이용한 매트리스 설치 즉시 견적 사이트는 답변까지 12시간이 걸렸음.
창의성은 복잡함과 동의어가 아님. 예를 들어 WCAG AAA 접근성 기준이라는 제약 안에서도 누구나 쓰기 편하면서 흥미롭고 보기 좋은 웹사이트를 만드는 데 진정한 창의성을 발휘할 수 있음.
lite.cnn.com은 CNN의 텍스트 전용 하위 도메인임. 아마 접근성을 위해 만든 것 같은데, 텍스트뿐이라 빠르게 로드되고 사용하기도 쾌적함.
사이트 자체보다 찾아서 호출할 수 있는 API나 WebMCP를 원하는 것 같음. 이용자가 사이트를 직접 볼 필요가 없는 형태임.
앞으로 웹은 에이전트용 화면 없는 서비스와 사람을 위한 화려한 UI로 양분될 수도 있음.
Ling's Cars를 보면 생각이 달라질 수도 있음. https://museum.lingscars.com/.
운영자가 은퇴한 뒤 지난해 새로 디자인하면서 전환율이 급락했을 거라고 목숨을 걸어도 좋을 정도임.
다들 거꾸로 생각하는 것 같음. AI로 쓰레기를 쏟아내는 사람보다, AI 결과물보다 나을 것도 없는 저질 작업을 지금까지 감내하게 만든 쪽에 화를 내야 함. 달라진 건 이제 그 쓰레기를 만드는 데 비용이 들지 않는다는 것뿐임. 임금님이 벌거벗었다는 사실이 드러난 셈임.
핵심은 발견 가능성과 왜곡된 유인 구조임. 검색 알고리즘은 오래전부터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했음. 예전에는 무언가 존재한다는 사실이 노력의 대리 지표였고, 일부는 그 노력을 다시 가치의 대리 지표로 삼았음.
이제는 결과물의 가치를 직접 평가해야 하니 불안해하는 것 같음. 그래서 기존 판단법을 유지하려고 AI의 도움을 받은 작업에는 일단 가치를 0으로 매기는 쪽으로 돌아서는 듯함.
1950~60년대 세계 최고의 인재들은 Jonas Salk와 일하거나 우주 개발에 참여하는 꿈을 꿨음. 지난 30년간 같은 수준의 인재를 적극적으로 끌어모아 만든 건 Google AdWords, 복잡한 보험 연계 금융상품, 무책임한 리더십, 둠스크롤링과 도파민 조작, 어디에나 끼어드는 광고였음. 똑똑해도 외롭고 집 한 채 갖기 어려운 세대까지 만들어놓고, 이제 와서 AI에 분노하는 건 납득하기 어려움.
시스템 엔지니어링을 25년 하면서 기술에 권태를 느끼게 됐음. 어릴 때 컴퓨터를 만들고 시스템을 해킹하고 친구들과 게임하던 즐거움으로 시작한 직업이었음. 하지만 대형 기술 회사에서는 이용자의 관심을 사로잡는 경험을 설계하는 UX 담당자 한 명을 기다리느라 여러 제품의 출시가 밀리기도 했음.
책을 파는 사이트와 광고, Facebook과 Twitter의 유해한 유명인 문화, 자신과 기기에 대한 집착이 정말 대단한 성취였을까? 부를 쌓는 대신 공감과 감성 지능을 잃어가는 게 목표인가? 차라리 Optimus Prime, Agent Smith, Hedonism bot이 미래를 놓고 싸운다면 Hedonism bot 편에 서겠음.
AI가 무엇을 하든 지난 30년간 인류가 스스로에게 한 일보다 더 화나게 하기는 어려울 것 같음. 기술 전문가에게는 지금이 기회임. 데이팅 앱 이용이 상당히 줄었다는 소식도 읽었음. 기술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광고 중심 검색이나 가정용 Amazon 도청기에 의존하지 않고, 아직은 광고가 없는 AI와 대화하며 사실을 찾을 수 있다면 사기꾼이 약자를 속이기도 더 어려워짐. AI가 그렇게 싫다면 떠나도 됨.
진짜 방어벽은 사람들이 작품에 쏟는 정서적 애착이라고 봄. Star Trek은 60주년이 됐고 최근 작품은 잘 봐줘야 평범한 수준인데도 계속 살아남음. 사람들이 이를 자기 정체성의 일부로 삼았기 때문임.
Star Wars, Doctor Who, Disney, The Kardashians, GTA, Harry Potter도 마찬가지임. 스트리밍 서비스는 아직 이를 깨닫지 못한 듯함. 10편 만들고 끝내는 방식으로는 깊은 애착을 형성하기 어려움.
Star Trek에 대한 애착 덕분에 승무원 전원이 말 그대로 Muppets로 변하는 이상한 에피소드도 버틸 수 있었음. 보기는 괴로웠음. “Days of our lives”를 테마로 한 에피소드도 있었음.
해자는 모델이 아직 혼자 해내지 못하거나, 시키는 데 엄청난 비용이 드는 일이라고 봄. Astra는 잘 모르고 Fable 5.1도 조금만 써봤는데, 프롬프트 한 번에 5시간 사용 한도의 85%를 소모했음.
내가 써본 LLM에는 틀을 벗어나 생각하는 능력이 전혀 없었음. ‘여섯 가지 사고 모자’ 같은 기법이 아니라, 여섯 살 아이가 친구들과 놀면서도 하는 식의 살짝 엉뚱한 수평적 사고를 말하는 것임. 그렇지 않았다면 이렇게 짧은 시간에 각종 ‘엔지니어링’을 이토록 많이 거치지 않았을 것임.
대체로 맞는 것 같지만, 창작의 상당 부분은 평범한 아이디어를 조합하는 일임. 아이디어를 여럿 떠올리고 그중 일부를 연결하는 식임.
AI는 이런 브레인스토밍에 아주 능함. “80년대 대중문화 소재를 잔뜩 알려줘”라고 하면 혼자 생각할 때보다 훨씬 긴 목록을 얻을 수 있고, 원하는 것을 고르는 판단은 직접 하면 됨.
AI가 사용자 본인이 머리를 써서 발휘했을 창의성을 대신할 수는 있지만, 그 결과를 접하는 다른 사람에게는 상상력을 자극하는 도움이 될 수 있음. 상황을 묘사하는 몇 문장만으로도 가능함.
실제로 있는지 확인해보지는 않았지만, Feynman이 생물학을 가르친다면 어떻게 할까 상상해본 적이 있음. 이제 AI로 이를 시도해 더 나은 결과를 얻을 수 있음.
비개발자나 당시의 나처럼 프로그래밍을 조금만 아는 사람도 멋진 걸 만들 수 있게 해줬던 Flash가 정말 그리움. 시각적 프로그래밍 도구로서 이를 제대로 대체한 제품은 아직 없다고 봄.
Godot에 그 잠재력이 있고 웹으로 내보내기도 가능함. 다만 그 자리는 이미 LLM이 차지했을 수도 있음.
사람들이 마음껏 실험하고 창의성을 펼쳐야 함. 이를 가로막는 건 지금의 AI 디자인 도구와 스킬임. lovable, emergent, frontend-design, Impeccable은 남의 취향을 담아 95% 완성된 웹사이트를 건네줌. 좋은 웹사이트지만 내 웹사이트는 아님.
이런 도구는 손을 떠나기도 전에 흐름의 모양을 정해버리는 노즐과 같음. 창의성을 제한 없이 발휘하고 싶다면 가공되지 않은 도구를 직접 써야 함.
랜딩 페이지의 표준화가 정말 반가움. 가격 버튼이 어디 있는지 추측하느라 0.1초라도 써야 한다면 그만큼 낭비임. 계속 표준화되고 지루한 형태로 남기를 바람.
아직 전 세계가 대체로 2026년 아닌가? 예전 글에만 연도를 붙이던 관례는 언제 바뀐 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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