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즘은 효과가 있을까? 5년 후의 재검토
요약
본 글은 지역 정치 논쟁과 조지주의(토지가치세)에 대한 개인적인 관찰을 담고 있습니다. 온라인 공론장보다는 선출직과의 직접 소통이 더 중요하며, 토지가치세는 경제학적 합의를 얻어왔음을 강조합니다. 나아가 전파 주파수나 물 등 공유 자원 전체로 과세를 확대하는 방안까지 제시합니다.
핵심 포인트
- 온라인 논쟁보다 선출직과의 직접 소통이 더 효과적이다.
- 토지가치세(LVT)는 여러 경제학파에서 지지해 온 개념이다.
- 공유 자원 전반(주파수, 물 등)으로 과세를 확대할 수 있다.
- 지역 개발은 금전적 이해관계가 주요 동인으로 작용한다.
온라인 논객보다 지방의회나 주 의회의 선출직을 설득하고, 완강한 반대자보다 이미 뜻이 맞는 이들과 협력하는 편이 낫다는 대목에 깊이 공감함. 우리 지역도 곧 단독주택 전용 용도지역 폐지를 표결하며, 통과를 예상하고 있음.
지역 정치 논쟁이 벌어지는 Facebook 댓글만 보면 극도로 팽팽한 사안처럼 보이지만, 지난 시장 선거도 댓글 분위기와 달리 진보 후보가 중도 후보를 압도했음. 공개회의 참석자도 지역 여론을 대표하지 못함. 반대자는 매번 나오지만 찬성자는 좀처럼 나오지 않기 때문임.
나도 조용히 읽는 이들을 설득한다는 생각으로 온라인 논쟁에 시간을 많이 쓰지만, 실제로 의미 있었던 대화는 거의 전부 선출직과 직접 나눈 대화였을 가능성이 큼.
공개 논쟁도 간접적으로 도움이 됨. 선출직이 행동에 나서려면 압박을 받을 때 자신을 설득력 있게 방어해 줄 지지층이 있다고 믿어야 하기 때문임.
다만 온라인 논객이나 강경 반대자를 진지하게 설득하려는 건 시간 낭비에 가까움. 대개 수가 많지도 않고, 이미 대부분의 논거를 접한 이들이 나중에 입장을 바꿀 이유도 별로 없음. 설득은 아직 입장이 정해지지 않은 이들을 대상으로 해야 하며, 확고한 입장을 뒤집는 드문 성공에 기대서는 안 됨.
우리 동네에서는 정반대임. 의회 회의 참석을 좌우하는 주된 요인은 금전적 이해관계로 보임.
산 정상에 사는데, 아래 도시로 가는 길은 제대로 된 도로 하나와 자주 폐쇄되는 작은 도로 둘뿐임. 도로 확장이나 신설도 현실적으로 불가능하고, 일자리·상점·식당을 충분히 만들 평지도 부족해 밀도를 높이면 결국 차로 30분 거리의 도시를 오가는 차량만 늘어남.
개발 안건이 나올 때마다 수입이 걸린 부동산 중개인, 개발업자, 건설업 종사자 수십 명이 참석하고, 지방선거 때마다 외지 개발업자의 자금 지원을 받는 후보가 등장함. 반대파는 선거에서는 압도하지만 조직력이 약해, 회의 참석자 수로 찬성파를 앞서는 일은 드묾.
기존 정책이 끼치는 피해가 크고 노숙·주거비·경제성장 같은 현안도 여기에 달려 있다는 점에서 답답함.
다리를 강제로 봉쇄하는 시위처럼, 대중의 주목을 끌기 위한 극단적 행동이 있어야 합리적인 타협안이 눈에 들어오고 추진되는 건 아닐까? 주택 공급 확대를 지지하는 YIMBY 진영도 내키지 않더라도 오버턴 윈도를 움직이는 전략을 써야 할지 모르겠음.
존재하는지도 모를 독자를 설득하려고 했던 논쟁이, 선출직에게 제시할 논거를 더 탄탄하게 만드는 데도 도움이 되지 않았을까?
토지가치세(LVT) 는 Pittsburgh처럼 미국에서도 시행된 역사가 있음. 또 조지주의는 토지가치의 100%를 세금으로 거두자는 것이며, 토지 과세 자체는 George 전후로 Smith, Ricardo, Mill, Friedman 등 여러 경제학자가 권장해 왔음.
고전파·신고전파·케인스학파·오스트리아학파를 가로질러 경제학자들이 합의할 만한 것이 있다면, 토지세가 소득세보다 낫다는 것임.
토지세를 공유자원 사용 전반으로 확대하면 어떨까? 전파 주파수, 채굴, 물, 이산화탄소 배출처럼 소유·면허·소비를 통해 공동의 자원을 사용하는 대상에 과세하는 방식임. 물론 신기술로 자원의 가치가 달라질 때마다 계속 조정해야 함.
Pittsburgh에 토지가치세가 있는데 왜 글의 지도에서 Pennsylvania에 색이 없나 싶었음. 주 단위로 시행하는 곳만 표시한 것일까? 토지세를 매기는 주가 있는지도 몰랐지만, Pittsburgh로 이사했을 때 토지와 건물에 세금이 따로 붙어 혼란스러웠던 건 기억남.
이곳을 보면 토지가치세가 별 의미 없다는 생각도 듦. 주택 소유자들은 부동산 세금 총액만 신경 쓰며, 토지와 건물 사이에 어떻게 나뉘는지는 아무도 관심을 두지 않기 때문임.
Milton Friedman 같은 경제적 우파도 지지했다는 사실은, 임대업자들이 토지가치세를 극좌 정책으로 낙인찍어 공론장에서 밀어내려 할 때 유용한 반박이 됨.
타당한 반론은 이미 상당한 소득세를 내며 재산을 쌓은 이들에게 높은 토지가치세가 불이익을 줄 수 있다는 정도라고 봄. 하지만 점진적으로 도입할 방법은 많으며, 다른 반론은 파고들면 대개 기득권 보호로 귀결됨.
내가 알기로 토지가치세는 가장 긍정적인 효과를 내는 세금이며, 다른 세금을 없애거나 조정하면 특히 효과적임. 하지만 집단적 협력이 필요한 탓인지 우리는 느리지만 가속되는 파국을 택하는 듯함.
해로운 조세제도를 줄이려 해도, 자원을 더 빨리 돈과 폐기물로 바꾸는 쪽이 큰 이익을 얻는 구조임. 그 과정을 최적화하도록 교육받은 이들이 많으니, 과학에 귀 기울여 멈추자는 생각이 오히려 반과학·기술 반대로 취급됨. 자동차 의존적 생활도 일상에서 수익을 뽑아내면서 보상을 주는 흔한 방식임. 아름다운 곳에 살지만 모든 활동에 차가 필요하고, 정작 자동차·연료·도로·주차장·특별 보조금을 부담하는 도시 주민을 악당처럼 비난함. 그토록 ‘자연스러운’ 보조금 없이는 외딴곳에서 살기 어려울 것임.
미국 남부에도 시행한 공동체가 있었고, 내 기억으로는 New Mexico의 한 마을이 시도한 사례 연구도 읽었음. 전면적인 토지가치세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음. 늘 예외와 허점투성이가 되고, 그 사례 연구에서는 부패까지 유발했음. 조세정책과 미국 정치 문화를 안다면 예측 가능한 결과임. 전면 도입을 하려면 법뿐 아니라 재산 소유에 대한 기대 자체를 백지에서 시작해야 함.
저자의 작업을 설득력 있게 검토한 글이지만, 초반의 보편적 기본소득(UBI) 언급은 빼는 편이 나아 보임. 토지가치세는 흥미로운 접근인 반면, 기본소득은 진영마다 감정이 격한 정치적 쟁점임.
한 아이디어를 다른 아이디어와 묶으면 그쪽에 붙은 부담까지 떠안게 됨. 지지자를 조금 쉽게 늘리는 대신, 훨씬 많은 이들에게 자신이 경계하던 사상이라는 경고 신호를 줄 수 있음. 아이디어 자체의 장점에 자신감을 가져야 함.
정책 입안자의 일을 대신해 주는 것이 로비의 80%쯤 됨. 지역에서 실현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필요한 준비를 끝내고 예산까지 요구하지 않을 경우 성사될 가능성이 높음.
준비를 마친 데다 재원 조달 계획까지 가져가도 성공 가능성이 상당함.
안타깝게도 내가 원하는 변화는 대부분 특정 이익집단과 충돌함. 전문직 면허 규제 완화, 의료계의 후견주의 축소, 소송제도 간소화 등이 그 예임.
방법은 얼마든지 떠올릴 수 있지만, 모두 이익은 소수에게 집중되고 비용은 널리 분산되는 ‘통행료 징수소’를 없애는 일임. 우리 정치제도는 이런 사안을 합리적으로 처리하지 못함.
한 사안에 몇 년씩 전업 활동가로 매달리지 않고도 더 효과적으로 맞설 전략이 있다면 정말 듣고 싶음.
직장에서도 통하는 방식임.
조지주의와 토지가치세를 볼 때마다 토지 공급이 정말 비탄력적인지 궁금했음. 글에서는 토지는 생산되지 않으며 세금이 바뀌어도 공급은 바뀌지 않는다고 하지만, 도시는 매립으로 토지를 늘릴 수 있음.
Chicago의 Adler Planetarium 부지는 Michigan호 연안에 잔해를 메워 만들었고, Boston의 Back Bay도 원래는 대서양의 만이었음. 반대로 침식·해수면 상승·지진·화산 분화로 땅을 잃거나, 오염 탓에 거주·건축이 불가능해질 수도 있음.
토지 소유자가 자연재해를 만들 수는 없지만, 특정 토양에서의 건축 허용이나 내진 기준처럼 실질적인 토지 공급을 좌우하는 정책에는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음. 이런 사실이 조지주의의 경제적 계산을 바꾸지 않을까? 그렇지 않다면 이유가 무엇일까?
토지 공급이 완전히 비탄력적이지는 않지만, 한 지역에 주거공간을 추가하는 일과 매립·침식을 비교하면 상대적으로 비탄력적임. 다만 그것만 보면 George의 토지가치 논리의 핵심을 놓치게 됨.
George는 토지의 경제적 가치가 그 위에서 수행한 개선 작업만으로 설명되는지를 통해 토지를 노동·자본과 구별했음. 그가 말한 ‘모든 자연적 기회 또는 힘’에 제약이 걸려 있는 것임.
매립에서는 매립 작업이 만든 가치와 남은 입지 가치를 구분해야 함. 후자가 지대이며, 조지주의는 주변 공동체와 해당 토지의 관계를 바탕으로 함. 공동체가 매립 수변 지역에 별 관심이 없다면, 막대한 비용을 들였더라도 가치와 지대는 높아지지 않음.
모두 맞는 내용이고 매립을 장려하는 조세정책도 가능하겠지만, 환경 문제에 부딪힐 가능성이 더 큼. 말 그대로 땅의 가장자리에서 생기는 예외적인 사안임.
핵심은 땅 자체보다 그 땅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임. 가치가 충분히 높으면 여러 용도로 활용하게 되지만, 현실에서는 대다수 지역의 가치가 그 수준에 못 미침.
조지주의, 즉 개량분을 제외한 토지가치에 대한 과세는 나와 많은 이들이 상상할 수 있는 가장 공정한 세금임. 경제와 사회의 가장 추한 면 중 하나인 지대 추구를 직접 억제함.
성장하는 지역의 땅과 부동산을 사놓고 30년간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주변 사람들이 열심히 일한 덕분에 가치가 오를 수 있음. 기여 없이 남의 기여로 이익을 얻는 동안, 그 땅을 더 생산적으로 활용할 이들은 접근하지 못함. 조지주의는 소유한 토지의 기본 가치에 과세해 이를 바로잡음.
조지주의와 함께, 일정 개수를 넘겨 직간접적으로 소유하는 부동산에 누진적으로 과세하는 제도가 세계적으로 절실함. 경제적 지대 추구는 미래 세대의 몫을 빼앗기 때문임.
글에 나오는지는 모르겠지만 누진 과세가 중요함. 대규모 토지 소유자도 소규모 임대인과 경쟁해야 하므로 세금을 임차인에게 전가하기 어려워짐.
지난 수십 년처럼 부의 격차가 빠르게 커질수록 땅값이 함께 치솟는 현상도 완화할 수 있을 것임. 사모펀드의 주택 소유 금지 같은 어설픈 땜질식 해법도 필요 없어짐.
지루한 실행 실무가 합의 변화에 앞서고, 심지어 변화를 이끈다는 건 기업 프로젝트에서도 흔한 일임. 코드를 먼저 만들고 특정 부서에서 앱이 잘 돌아간다고 홍보한 뒤에야 예산과 승인이 나오곤 함. 다만 그때는 다른 관리자의 프로젝트가 됨.
글을 다 읽었는데, 조지주의가 실제로 효과가 있었는지 다룬 부분을 내가 놓친 걸까? 주택 공급은 늘었고, 부의 격차는 줄었으며, 도시가 통근 환경을 개선할 만큼 세수가 확보됐을까?
아직 판단하기에는 이른 듯함. 일단 몇몇 법안은 통과시킨 상태임.
놓친 부분이 있음. III절 끝부분, 마지막 두 색상 구분 이미지 주변을 다시 읽어보면 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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