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학의 어두운 밤
요약
AI의 발전이 수학자와 프로그래머 등 지식 노동자의 창작 과정과 정체성에 미치는 심리적·철학적 영향을 다룹니다. 직접적인 창조의 즐거움이 생산성 향상과 모델 관리로 대체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상실감과 가치관의 변화를 성찰합니다.
핵심 포인트
- AI로 인한 생산성 향상이 창작의 본질적인 즐거움을 대체할 위험성
- 지식 노동자가 느끼는 주도성 상실과 정체성 위기
- 인간의 특별함이 줄어드는 시대에 새로운 가치와 즐거움을 찾는 법
- AI 시대의 학습과 창작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한 고찰
모든 지식 노동자가 비슷한 위기를 겪게 되며, 자기 기예를 깊이 사랑한 사람일수록 더 고통스러울 것임
일과 맺는 관계를 바꾸고 훨씬 많은 결과물을 만들 수 있게 됐음을 받아들여야 함. 수학자도 개별 정리에 수십 년을 쓰는 대신 새로운 수학 분야 전체를 만들 수 있고, 직접 창조하지 않더라도 연구를 지휘하며 참여하게 될 것임
즐거움은 바로 직접 창조하는 과정에서 나옴. 헬리콥터로 에베레스트 정상에 가는 것과 직접 등반하는 일은 보람이 다름
예술가는 그림 그리기를, 수학자는 정리 증명을, 프로그래머는 코드를 직접 입력하기를 즐기는데, 우리는 주도성 높은 즐거운 일을 없애고 모델 돌보기로 대체하고 있음
AI가 유용해지기 전에 수학 박사 학위를 받았고 극단적인 완벽주의에 가까울 만큼 작업을 아끼지만, 지난 수백 년간 이어진 수학의 방식이 끝나가는 현실보다 앞으로가 훨씬 기대됨
수학은 원래 발견하고 이해하는 일이었는데, 그 문이 활짝 열린 상황을 인간이 덜 특별하고 가치 있게 느껴진다는 이유로 비극이라 부르는 건 자기중심적임. 수학의 깊고 영적인 아름다움은 인간이나 AI보다 앞서고 위에 있으며, 어떤 방법으로든 그 아름다움에 닿는 일은 경이로움
다만 기업들이 자신을 죽게 만들려 한다는 글쓴이의 문장은 충격적임. 실제로 심각한 정서적·사회적 위기를 겪고 있어 안타깝지만, 현재의 상처와 수학의 본질에 대한 미학을 분리하기 어려운 상태일 수 있음
인간이 연구에 계속 참여하리라는 보장은 없음. AI는 인간이 방해하지 않을 때 더 잘할 수도 있고, 필요한 인원이 크게 줄거나 공급 과잉으로 임금이 낮아져 부자만 그 즐거움을 누릴 수도 있음
지금은 아노미의 시대이며 성공으로 향하는 정해진 길이 사라지고 세상은 날마다 더 해독하기 어려워짐
소프트웨어 개발자로서 지난 8개월가량 비슷한 상실을 겪고 있음. 자살을 생각할 정도는 아니고 신비주의적인 의미도 부여하지 않지만, 손으로 정성껏 소프트웨어를 만들던 열정이 사라지는 느낌에는 공감함
더 많은 결과물을 만든다는 말도 위로가 되지 않음. 좋아하던 작업은 제거되는 반면 생산성 향상의 가치는 노동자 다수에게 돌아오지 않으며, AI는 생산성과 임금의 격차를 크게 가속할 가능성이 높음. 과거를 붙들 수는 없지만 개인에게서 실제 무언가가 빠르게 빼앗기고 있으며, 관점을 바꾸라는 가벼운 동기부여로 해결될 일이 아님
현재로서는 LLM을 활용해 이미 아는 분야를 더 깊고 넓게 살펴보고 더 많은 자료를 얻는 과정이 꽤 만족스러움
하지만 결과물이 계속 내가 만든 것이라 할 수 있을지는 불확실함. 내 이해 범위를 완전히 넘거나 의도와 다른 방향으로 바뀔 수 있으며, 수학자는 무용감을 느끼는 데 그칠지 몰라도 경제학자는 자신의 관점이 주류에서 배제되는 문제까지 겪을 수 있음
이 글 덕분에 내 감정을 알아주는 느낌을 받았음. 아무도 좋아하는 일을 막지 않는다는 말은 틀렸으며, LLM은 어떤 활동을 더는 즐겁지 않게 만드는 환경을 조성함
예컨대 프로그래밍 언어 학습의 효용이 줄었기 때문에 2026년에 배우는 즐거움은 2016년보다 작아짐
효용이 줄었다고 즐거움도 줄어야 하는지는 의문임. 체스는 실용성이 거의 없어도 많은 사람이 즐기며, 컴퓨터가 인간보다 강해진 뒤에도 체스는 계속 사랑받고 엔진의 분석 덕분에 더 깊이 즐기기도 함
줄어드는 것은 자신이 특별하다는 느낌에 가까움. 인간은 우주의 중심도, 유일하게 체스를 잘 두는 존재도 아니며, 그 사실이 자존심을 상하게 해도 가치 있는 자부심이었는지는 불분명함
나나 다른 사람에게 유용할 가능성은 배움의 큰 동기이고, 다른 사람이 멋지다고 여기는 것은 창작의 큰 동기임. 배울 것이 쓸모없고 만든 것이 인상적이지 않다면 굳이 배우거나 만들 이유를 찾기 어려우며, 나는 자신만을 위해 창작한 적이 없음
프로그래밍 언어를 배우는 즐거움은 유용성보다 추상화와 사고 퍼즐을 탐구하는 데서 나옴
요즘은 직접 코드를 거의 쓰지 않고 LLM이 작성한 코드를 검토하고 교정하므로, LLM 없이 낯선 언어로 푸는 Advent of Code가 오히려 더 즐거울 듯함. 퍼즐과 새 언어를 즐기면서 코드 작성 감각도 다시 단련할 수 있음
즐거움은 효용이 아니라 활동 자체에서 나와야 함. 여러 프로그래밍 언어를 계속 배우는 이유도 그 자체가 재미있기 때문임
반대로 LLM 덕분에 프로그래밍의 즐거움을 되찾았다는 사람도 더 많이 봤음
수학 탐구는 세상에 새로운 결과인지와 무관하게 재미있음. 새 발견을 직업적 승진과 연결하는 제도는 바꿀 수 있으며, 이미 수많은 사람이 본 삼나무라도 처음 직접 보면 즐거운 것처럼 수학도 마찬가지임
과거에는 오랫동안 결과를 알아낸 뒤에야 기존 문헌에서 같은 내용을 찾곤 했지만, 이제 AI가 지식과 해명을 안내해 주고 원하는 곳에서 자유롭게 탐험하도록 도와줌. 현재도 탐구에 필요한 계산 도구를 AI로 만들고 있음
유급 수학 일자리가 사라져도 곧 풍요로운 세계가 올 가능성이 있으며, 생활비가 크게 낮아져 수학을 원하는 사람이 충분한 시간을 얻을 수도 있음. AI가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을 양산하는 건 반갑지 않지만 인간도 이미 그러고 있으며, AI는 방대한 지식을 검색하고 이해할 수 있게 해 그 가치를 높여 줌. 20년 넘게 포화 상태였던 수학 고용시장과 달리, 새 도구는 연구 도서관이나 최고 수학과 없이도 수학 연구에 접근하게 해줌
자연의 아름다움을 즐기는 일은 다행히 직업·돈·사회적 지위와 완전히 분리할 수 있으며, 수학 탐구도 마찬가지임
무료 의료, 월세 100달러, 기본소득, 테라포밍된 화성으로 가는 워프 Tesla까지 생길 거라는 식의 낙관론으로 들림
곧 풍요로운 세계가 온다는 전망은 우스움. 풍요가 커지면 그중 불균형하게 많은 몫을 차지하려는 사람도 늘 것이므로 그런 세계는 결코 오지 않을 것임
인간 수학이 수천 년에 걸친 철학적·종교적 대화라는 표현은 아름다움. 이런 풍요로움은 어떤 형태로든 역사와 인간 삶의 핵심에 남겠지만, 시간이 지나며 크게 변하고 수학이 작은 일부로만 남을 수도 있음
Vladimir Arnold의 도발적인 구분처럼 수학은 암호학, 유체역학, 천체역학으로 나뉘고 각각 정보기관·원자력 잠수함·미사일 기관의 지원을 받아 수론, 대수기하학, 복소해석, 편미분방정식, 동역학계, 위상수학 등을 낳았음. 이런 부분은 과거 수학자에게 맡겼듯 AI에 맡길 수 있지만, 서로 다른 영역 사이의 신비로운 연결은 여전히 수학에서 가장 놀랍고 즐거운 특징임
수학의 종교적 차원을 인정한다면 이 실존적 문제에 대한 종교적 답인 기도를 배제할 이유가 없음
수학 담론을 철학의 풍부함과 비교하는 건 과장돼 보임
요정이 나타나 평생의 발견 과정을 사소하게 만들고 오늘 당장 모든 답을 주겠다고 했을 때 거절한다면, 아마 과학을 하는 것은 아닐 가능성이 큼
현실의 과학자라면 모든 답을 주는 요정에게 동의하고 예술가나 장인은 거절한다는 구분은 무의미함
배관공은 보수를 받을 수 있다면 즉시 해결해 주는 요정을 받아들이겠지만, 고객이 직접 요정에게 묻는 순간 배관공은 불필요해짐. 반면 과학의 핵심은 답 자체가 아니라 발견 과정에서 얻는 지식과 이해이므로 과학자는 거절할 수 있음
수학 작업의 큰 가치는 결과보다 여정에 있음. 개별 명제의 참·거짓보다 그것을 도출하기 위해 만든 수학적 장치가 더 중요하며, 요정이 답만 알려주면 결국 거꾸로 추적해 그 장치를 직접 개발해야 함. 다른 과학도 어느 정도 마찬가지임
이 사고실험에는 맞지 않는 부분이 많음. 답을 들은 뒤 삶과 세계가 달라지므로 그 정보가 이후 인생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으며, 한 사람의 경력 동안 이룰 발견도 그리 많지 않음
많은 연구는 당시 세계의 상태와 언어에 의존해 과거로 옮길 수 없고, 삶에 예상 밖의 복잡성이 계속되는 한 요정의 답은 표면만 긁을 뿐이므로 이후에도 과학이나 기예를 계속할 수 있음
자살까지 생각할 정도로 신념의 위기를 겪는 사람에게 하기에는 무심한 말임
모든 소원이 즉시 이루어지기를 바란다는 페르시아의 저주가 떠오름
기술 관련 학위 과정에서는 영화 "The Man in the White Suit"(1951)
필수로 보여줘야 함새 기술은 더 어렵고 오래된 방식에 재능을 가진 사람의 중요성을 낮추면서 인간 경험의 일부를 훼손함. AI는 수많은 지적 재능을 무용하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그 극단에 있음
수학을 하던 시절에는 내 연구보다 다른 사람의 작업을 읽는 일이 더 보람 있었음. 한 문제에서 작은 진전을 얻는 데 수년을 쓰는 대신 논문을 며칠이나 몇 주 읽으며 새로운 것을 즐길 수 있었음
그래서 사람들이 예측하는 전지적인 수학 기계를 환영하며, 궁금했던 모든 질문을 던질 날이 기다려짐
다른 사람의 작업이라는 사실이 중요했는지, 아니면 답을 이해하는 만족만으로 충분했는지 궁금함
학부 때 수학에 끌린 계기는 수천 킬로미터와 수백 년, 언어와 문화를 넘어 다른 인간과 대화하는 일로 수학을 바라보게 해준 교사였음. 누군가 평생 공들인 창조물을 내 정신이 이해한다는 데 오래된 동굴 벽화를 보는 것보다 깊은 낭만이 있었음
컴퓨터가 만든 수학에서는 그 감정을 재현하지 못했고, AI 동반자로 인간관계를 대신하는 것처럼 불편함. 의료 발전에는 낙관적이고 지난 2천 년간 인간이 만든 수학만 공부해도 평생 충분하지만, 인간의 수학적 창조를 시간 너머로 전달하는 프로젝트가 끝나거나 값싼 취미로 축소되는 듯해 미래 세대가 잃을 것을 생각하면 슬픔
기계가 리만 가설을 증명하고 설명해 줘도 별로 관심이 없을 듯함. 수학은 아름다움을 표현하고 창조자의 영혼을 드러내기 때문에 흥미로운 것이며, 답만 아는 일은 곧 지루해짐. 순수하게 답만 원하는 사람은 극소수일 것임
수학은 관계와 그 결과를 발견하는 일이므로 LLM이 따라잡는 건 자연스럽지만, LLM에는 그 관계를 감상하는 능력이 없음
신학적 질문에도 LLM은 논리적인 답을 내지만, 그것을 평가하고 이해하며 감상하는 일은 여전히 인간의 몫임. 패턴 인식이 인간의 이해와 감상을 불필요하게 만든다는 결론은 논리적 비약이며, 효용과 목적을 혼동한 듯함
수학만 특별히 인간을 고양하는 영적 활동은 아니며 텃밭을 돌보는 일도 영적일 수 있음. 철학이나 신학에서는 인간 저자의 관점과 삶을 고려해야 하는데 LLM은 여러 관점을 뒤섞으므로, 제대로 배우고 사유하려 할 때는 사용하지 않을 것임
수학에서 영적인 것은 최종 답보다 창의성과 탁월함이 담긴 과정임. 텃밭보다 훨씬 큰 노력과 복잡성이 영성을 강화하며, LLM이 증명을 사소하게 만들면 수학자는 창조자가 아니라 교사와 해설자가 되어 재미있는 부분을 잃게 됨
원하는 수학을 취미로 계속할 수는 있어도 그것만 하며 생계를 유지하기는 어려워짐
수학자로서 LLM에 전혀 위협을 느끼지 않음. 이론을 만들고 아름다움을 바라보는 데 즐거움이 있으며, 증명도 보람 있지만 어려운 증명에서 LLM이 막힘을 풀어 준다면 환영함
LLM으로 더 많은 수학이 형식화되고 모든 수학이 형식화되면 큰 진전이 시작될 것으로 기대함
버튼 하나로 잡초가 사라지고 텃밭이 완벽하게 자라며 대부분이 그 버튼을 쓴다면, 영성을 위해 직접 가꾸는 사람도 발밑의 기반이 사라졌다고 느낄 것임
Robert Pirsig가 오토바이 정비를 영적 활동이라 본 것도 필요한 인내와 불확실성 때문이었으며, 버튼만 누르면 되는 순간 영적인 과정도 사라짐
괜찮은 수학자가 되지 못하리라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이미 내게는 황혼이 찾아왔음. LLM은 그 과정을 모두에게 확산했을 뿐일지도 모름
이해하기 어려운 전문 용어로 자기 연구에 해자를 두면서 남이 이해하는지 신경 쓰지 않던 수학자들이 많았음. 이제 자신보다 훨씬 유능해지는 무언가를 만나 곧 본인들이 어둠 속에 남을 수 있다는 점에서 업보일 수도 있음
내 경우 괜찮은 수학자가 되지 못하리라고 깨닫게 한 것은 실해석학 수업이었음
수학의 핵심은 직접 발견하며 즐기는 것임. LLM과 함께 결과를 찾을 수는 있어도 스스로 하지 않으면 수학자가 될 수 없으며, 이해하지도 못하는 결과를 쏟아내는 능력은 민주화가 아님
변화가 가속하는데 우리가 고려하는 시간 범위는 오히려 짧아지고 있음. 개별 변화 하나를 걱정하는 사이 연쇄적인 변화가 곧 뒤따를 것임
AI는 온순한 장기 전환이 아니라 최초의 단세포 생명 이후 어떤 전환보다 규모가 크고, 웹 보급보다 빠르게 진행됨. 인간이 도구를 받아들이는 속도가 병목이 되지도 않으며, AI가 도구의 조종권을 잡고 인간의 적응 없이도 개선되고 있음
인간의 지적 우위와 형언하기 어려운 경험이 지금 사라지고 있지만 모든 것이 끝나지는 않을 수 있음. 20년, 50년, 100년 후에도 다른 존재들이 개척지에서 신비로운 경험과 발견의 내재적 보상을 누릴 것이며, 특이한 관심사를 좇는 성향은 예상 밖 진보가 주는 막대한 평균 수익 때문에 계속될 가능성이 큼
미래의 존재가 덜 흥미로워질 가능성은 낮으며, 지금 가슴이나 배가 요동치지 않는다면 이 순간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것임
AI가 단세포 생명 이후 가장 큰 전환이라는 말까지 나온다면 잠시 기기에서 벗어나 하루 쉬는 편이 좋겠음
AI 자동 생성 콘텐츠
본 콘텐츠는 GeekNews의 원문을 AI가 자동으로 요약·번역·분석한 것입니다. 원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으며, 정확한 내용은 반드시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원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