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I와 창작 공유지의 파괴
요약
AI 기술은 창작과 소프트웨어 개발의 진입장벽을 혁신적으로 낮추어 인류에게 큰 선물로 작용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유 소프트웨어와 창작 생태계에 근본적인 변화를 가져오고 있으며, 기존의 사회적 계약이나 수익화 모델이 무너지고 있음을 시사합니다. 다만, AI가 소수 기업의 통제 하에 놓일 경우 그 가치가 제한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됩니다.
핵심 포인트
- AI는 창작과 개발의 진입장벽을 획기적으로 낮추어 생산성을 높인다.
- 기술 발전은 늘 사회적 계약을 깨뜨리며, 이는 혁신적인 파괴로 포장된다.
- 오픈소스 문화와 기술 업계는 자기 홍보 및 수익화 통제에 대한 욕구가 강하다.
- AI의 진정한 가치는 개방성과 접근성에 달려 있으며, 기업의 제한은 위험할 수 있다.
이런 비판은 정말 이해하기 어려움. AI는 자유 소프트웨어에 일어난 최고의 일이며, 사실상 어떤 소프트웨어든 자유 소프트웨어로 바꿔 줌. 파일 형식, 프로토콜, 바이너리를 던져 주면 빠르게 역공학할 수 있고, 사용자가 직접 소프트웨어를 수정한다는 오랜 목표도 훨씬 실현하기 쉬워짐. 필요한 지식뿐 아니라 시간의 장벽까지 크게 낮아짐.
Creative Commons도 작품을 내 프로젝트에 맞게 수정하는 수고가 새로 만드는 것과 비슷해 실용성이 제한적이었지만, 이제 누구나 이미지 생성기를 만지며 원하는 결과를 얻을 수 있음. 사회적 계약이 어느 정도 깨지는 건 맞지만, 그 계약이 해결하려던 문제도 사라지고 있음. 창작은 쉬워지고 일상적인 작업이 되었으며, 70년간 시도해 온 자연어 컴퓨터 상호작용도 LLM이 실현함.
진입장벽을 지키거나 자존심·포트폴리오를 위해 창작한다면 AI가 골칫거리겠지만, 실제로 무언가를 만들고 싶다면 하늘이 준 선물임. 사실상 Star Trek의 홀로덱과 복제기가 있는 미래를 살면서도 불평할 이유를 찾고 있음.
자유 소프트웨어로 원하는 일을 하는 걸 누구도 막지 않았음. 장벽은 지식·이해·전문성·노력이었고, AI가 이를 대신 해결해 주지는 못함. 개념을 이해하거나 같은 노력을 들이지 않고도 예전에 못 하던 일을 할 수 있다는 효용은 분명하지만, 그것이 자유 소프트웨어 전체에 이롭다는 근거는 약함. 지금까지 순이익인지 순손실인지도 불분명하며, 대기업에는 확실한 승리임.
기계든 다른 사람이든 사고와 노력을 대신 맡긴다고 기대만큼 해방되는 것은 아님. 특히 그 노력이 단순 반복 작업이 아니라 자신을 성장시키는 과정이라면 더욱 그러함.
대기업 AI가 가중치 공개 모델을 제한하면 이 논리는 전부 무너짐. 기업들은 분명 그렇게 하려 함. 소수 기업에 돈을 내는 것만이 유일한 이용 방법이라면, AI는 자유 소프트웨어에 일어난 최고의 일이 아님.
자유 소프트웨어 옹호자들이 AI를 싫어하는 모습이 혼란스러웠지만, 그들이 오픈소스 라이선스로 공개하는 동기가 내가 짐작했던 것과 매우 다르다는 걸 깨닫고 이해하게 됨.
깨졌다는 사회적 계약은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다고 봄. AI 이전에도 “내 인기 오픈소스 라이브러리를 시가총액 수조 달러 기업들이 쓰는데 나는 아무것도 얻지 못한다”는 불평은 흔했음. 갈등은 늘 있었고, 이제 그 성격만 달라짐.
오픈소스 문화의 큰 문제 중 하나는 자기 홍보만을 목적으로 하는 활동이 지배적이 되었다는 것임. 그것이 면접 평가 항목으로 자리 잡으면서 “PR을 병합시키면 큰돈을 번다”는 약속에 모든 유인 구조가 뒤틀림.
기술 업계는 늘 사회적 계약을 깨뜨려 왔음. 택시와 숙박업에도 똑같이 했으며, 모든 것을 망가뜨린다는 현실이 불편해서 “우리가 더 잘 안다”는 오만을 ‘혁신적 파괴’라는 말로 포장함.
더 잘 안다는 이유로 법과 규제를 무시하면서, 여행객에게는 이상한 규칙과 할 일 목록, 청소비가 딸린 아늑한 숙소를 선사함. 새로운 노예 계층도 만들었는데, 아, 플랫폼 노동자라고 불러야 함.
이제 정보와 콘텐츠에도 같은 일을 하고 있음. 창작자는 제대로 수익화할 책임감이 없으니 우리가 대신 모든 작업의 수익화를 통제해야 한다는 식임. 권력과 통제를 원한다는 말은 실수였고, 세상을 더 좋게 만들려는 뜻이라고 정정함.
그건 내 방식이 아니며,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음. 나는 일자리를 없애는 도구가 아니라 일을 덜 고되게 만드는 도구를 만듦. 더 위험하거나 비윤리적인 선택도 하지 않음. ‘너희’라고 말할 수 있는 위치에서 무심코 ‘우리’라고 묶지 않도록 주의해야 함.
의도적으로 해를 끼치지 않고, 해고를 완곡어법으로 포장하지 않으며, 손쉽게 사람을 자르는 문화에 저항할 수 있음. 가장 보수가 좋고 역동적이며 즐거웠던 직장에서, 우려 사항과 사직서를 준비해 회사와 고객에게 알리고 서명할 의사를 밝힌 어느 오후가 이후 어느 때보다 업계에 좋은 영향을 줬을지도 모름. 이런 카드는 경력 전체에서 한 번쯤만 쓸 수 있으니 신중해야 함.
수십 명의 일자리를 없앨 줄 알았던 프로젝트에서도, 기존 계약 종료·이직·은퇴까지 제품으로 원래 업무를 계속하게 하고 결원 미충원으로 서서히 인원을 줄이는 방법을 찾았음.
시스템 설계를 처음 배울 때, 외부인이 보기엔 시끄럽고 지치고 괴로운 일도 당사자에게 목적과 의미를 줄 수 있다고 배움. 일자리를 없앨 수 있는 일을 논할 때는 당사자의 눈을 바라봐야 하며, 대체할 필요가 없는 일자리는 대체하지 않아야 함. 그들이 기울이던 주의와 책임을 시스템도 다하도록 해야 함. 이런 태도를 용납하지 않는 기업 문화라면 바꾸거나 떠나야 함.
내가 자란 작은 도시에는 이제 택시가 없음. 예전에는 한두 명이 거의 전업으로 일하며 적자인 평일 밤을 주말과 겨울 휴가철 수입으로 메워, 어느 밤이든 기차역이나 외출 장소에서 귀가할 수 있었음.
독점이 깨지자 수익성 좋은 주말에 경쟁자가 몰렸고, 처음에는 요금도 내려가고 배차도 빨라짐. 하지만 기존 기사들이 줄어든 수입을 버티지 못해 다른 일을 찾았고, 수요일 새벽에 두 번 운행하려고 밤을 새울 사람은 없어짐. 이제 대부분의 날에는 택시를 부를 수 없음. 수익성 좋은 부분만 경쟁에 노출된 결과가 이러함. 오픈소스에서도 같은 일이 생길까? 이미 AI 때문에 유지관리자가 소진되는 모습이 보이는데, 어디로 이어질지 걱정됨.
경력 2년 차쯤, 우리 SaaS를 도입하려는 회사의 Excel 기반 업무 현장을 방문함. 사장이 대부분 여성인 직원 약 30명이 일하는 사무실을 보여 주며, 제품을 구독하면 세 명만 필요할 것이라고 속삭임.
나는 그때 우리가 하는 일의 잔혹함을 깨달았고, 동행한 영업 담당자는 가격을 훨씬 높여야 한다는 걸 깨달음.
기술 전체를 싸잡는 과장 때문에 논지가 무너짐. 더 나은 단백질 접힘 소프트웨어를 설계하는 엔지니어는 누구의 생계를 파괴하는가? Linus는 모두에게 더 낫고 풍요로운 세상을 만들어 줌. 흔한 일정 관리 도구를 내놓는 작은 스타트업도 누구에게 해를 끼치거나 다른 노동자의 해고를 직접 유발하지는 않음. 모두가 Uber에서 일하는 것은 아님.
1~2년 안에 OpenAI와 Anthropic은 사람들이 쓸 만한 거의 모든 도구의 자체 버전을 갖추게 될 것으로 예상함. 내부 에이전트가 인간·코드 검토·GitHub 주기로는 따라갈 수 없는 속도로 이를 강화하고 개선할 것임.
모델은 자체 도구와 라이브러리의 특성까지 학습하고 이를 기본으로 사용하게 됨. 코딩 에이전트가 사용성 정보를 본사로 보내면 내부 에이전트가 즉시 반영하고, 운영 에이전트도 버그와 실행 성능에 같은 일을 하게 될 것임. 이 상황에서 사람이 운영하는 오픈소스 프로젝트가 굳이 계속할 이유나 방법이 잘 보이지 않음.
나는 사이버보안 ‘전문가’이며, 40명 규모의 팀과 함께 직접 작성한 GPL 소프트웨어를 세상에 제공하며 돈을 벌고 있음. 관심과 고객을 얻으려는 목적이라면 공개의 유인은 여전히 같음. 고객은 특정 공급업체에 종속되지 않으므로 비용을 지불하면서도 부당한 요구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 신뢰할 수 있고, 내가 사고로 사라져도 다른 사람이 제품을 이어갈 수 있음.
공급망 위험과 취약점은 LLM 이전부터 있었으며, 이제는 대응이 더 쉬워짐. 우리 조직도 매주 쏟아지는 업데이트를 훨씬 수월하게 처리함. 공개 코드에서 취약점을 찾기 쉽다는 사실은 AI가 바꾼 게 아님. 저품질 생성물이 넘치는 건 사실이지만 에이전트와 LLM으로 대응하기도 쉬워져 어느 정도 상쇄됨.
라이선스는 여전히 법정에서 집행할 수 있음. AI가 코드를 학습하고 그 능력을 판매하는 일을 되돌릴 수 없다는 건 아쉽지만, 인간도 이전부터 같은 일을 해 왔음. 공로를 인정받지 못하는 대신 AI라는 도구를 얻었고, 나는 그것이 정말 좋음. 내 코드와 콘텐츠도 학습에 쓰이지만, 우리 분야의 최고 제품을 물으면 AI가 우리 제품을 추천해 주기도 함.
앞으로 해결해야 할 거대한 고통이 있음. 아홉 살 아이와 작별하며 우는 가족이 있는 답답하고 어두운 병실을 직접 겪었고, 그 고통을 조금이라도 줄일 수 있다면 이전 세대의 오픈소스 윤리를 주저 없이 포기할 수 있음. 내 코드가 AI 학습을 통해 그 해결책에 아주 조금이라도 기여한다는 게 자랑스러우며, 인류가 필요로 하는 돌파구에 도움이 된다면 기꺼이 제공하겠음.
프로그래머 초기에 WordFence 덕분에 덜 힘들었음. 고객이 웹사이트에 플러그인, 사실상 백도어를 계속 설치하는 건 끝없는 싸움이었음. 지금은 WordPress를 거의 다루지 않지만 당시 가장 좋아하던 플러그인이었음.
LLM의 영향을 평가할 때마다 “이전에도 있었다”는 논리가 나오지만, 핵심은 규모와 소수 인원의 대규모 실행 능력임. LLM은 기존 문제에 엄청난 기름을 붓고 있는데도 대수롭지 않게 넘기고 있음.
가짜 뉴스는 늘 있었지만, 이제 인도에 있는 한 사람이 여러 위장 언론 계정에 우익 콘텐츠와 이미지를 상상 못 할 규모로 퍼뜨릴 수 있음. 몇 달 전 실제로 있었던 일임. 길을 건너다 죽는 일도 원래 있었지만, 자동차가 등장하자 보행자 안전 논의는 크게 달라짐. “원래 죽을 수 있었다”는 말로 끝내지 않았음.
지금으로서는 AI를 얻은 것이 오히려 순손실에 가까움. 저품질 생성물, AI 관련 정신증, 끊임없는 파국론 도발이 쏟아짐. 무엇을 하거나 배우든 “왜 굳이 하느냐, AI를 쓰면 되는데”라는 무의미의 논리도 따라붙음.
사탕 가게에 영원히 갇힌 아이는 잠깐 행복하겠지만, 결국 배고프고 몸이 나빠짐. 설탕을 아무리 먹어도 나아지지 않음.
분노의 상당 부분은 AI가 학습하면서 공로를 인정하지 않는다는 점에서 비롯된다고 봄. 많은 이들이 남을 돕기보다 개인적 이익을 위해 공개해 왔던 셈임. 이익 추구 자체는 비공개 소프트웨어 판매처럼 괜찮지만, 공익을 내세워 추가 이익을 얻는 기만은 별개임.
타인의 삶을 개선하려던 사람이라면 LLM 학습을 무언가 빼앗기는 일로 볼 이유가 없음. 오히려 자신의 결과물이 예상보다 훨씬 다양한 문제를 푸는 범용 문제 해결 도구에 기여하게 됨.
내 콘텐츠가 학습에 쓰였다면 기꺼이 받아들임. 기여 비중으로 따져 기업이 내게 줘야 할 연간 0.000001달러보다, 개인 생활에서 매일 얻는 가치가 압도적으로 큼.
AI를 싫어하거나 두려워할 다른 이유는 있음. 하지만 무언가 ‘도둑맞았다’며 블로그를 닫고 저장소를 비공개로 돌리는 건 숨은 동기가 있었다는 걸 드러냄. 처음부터 솔직했다면 괜찮았겠지만, 그런 오픈소스 개발자들은 애초부터 공익을 내세워 이득을 챙겼던 것처럼 보임.
소스 비공개로는 안전해지지 않음. LLM은 디컴파일에도 매우 능숙함. 최근 몇 주 동안 게임의 클린룸 이식판을 놀랄 만큼 많이 봤고, 오늘 아침에도 Zelda 2 PC 이식판을 봄. 그렇다고 글쓴이의 비관론에 동의하지는 않음.
LLM으로 수행한 작업은 클린룸 구현이 아님.
라이선스 의무를 법적으로 집행하려는 움직임이 없다고 비판하면서, 세 문단 앞에서는 자유로운 코드 공유의 장점을 찬양하고 있음. 비공개 코드의 오류를 찾기가 훨씬 어렵다는 것도 최첨단 모델에는 큰 차이가 아닐 수 있음. 역어셈블이 가능하고, 프로그램의 동작을 이해하는 데 읽기 좋은 코드가 꼭 필요하지 않기 때문임.
AI에 코드를 통째로 먹이고 싶지 않은 마음은 이해하지만, 지금은 잘못된 방향이라고 봄. 코드 채택이 인기에 좌우되지 않고 빨라진 것일 뿐이며, 폐쇄형 모델과 폐쇄 생태계에 갇히지만 않는다면 MIT 라이선스 공유와 크게 다르지 않음.
우리는 특허를 존중하거나 집행하지 않는 문화권과 같은 세상에 살고 있음. 인터넷은 정보 공유 비용을 크게 낮춰 경쟁력을 유지하게 해 줬고, AI는 그 효과가 더 강한 도구임. 경쟁력을 더 오래 유지하는 데 도움이 될 것임.
인터넷의 숨은 단점은 AI에서 더 심해지지만 장점도 더 커짐. 대체로 우리가 이미 받아들인 거래와 같음. “정보는 자유로워지려 한다”는 말이 정보가 해롭지 않다는 뜻은 아니었음.
우리가 힘을 모아 새로운 디지털 르네상스를 만들어도, 그들은 그것마저 기계에 먹일 것임. 새로운 암흑시대로 자연스럽게 들어가는 게 아니라, 행동을 숨기지도 않고 정체와 소재도 확인할 수 있는 특정 행위자들에게 떠밀리고 있음.
기술이 언제나 사회에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사실을, 수많은 기술자가 현대 AI가 등장한 뒤에야 깨달았다는 게 흥미롭고 씁쓸함. 인터넷의 이점은 많지만, 세상을 대체로 긍정적으로 바꾸고 사람들의 역량을 키웠다고 할 수 있을까?
소셜 미디어와 관련된 청소년 불안·우울·괴롭힘·신체상 문제·수면 장애·도파민 반복 자극, 선거 조작을 위한 허위 정보 확산은 어떠한가? 포르노의 영향, 성매매 목적 인신매매, 매년 수천억 달러의 인터넷 사기 피해, 사생활 침해와 개인정보의 대규모 절도·판매, 정치에 손을 뻗는 기술 과점 기업도 있음. 허락보다 용서를 구하겠다며 합법적 사업체를 벼랑으로 몰고 동네를 불법 숙박업소 밀집지로 바꾼 스타트업, 플랫폼 노동으로 내몰린 수많은 사람도 빼놓을 수 없음.
인터넷이 대체로 긍정적이고 힘을 실어 줬던 대상은 이런 일에서 이익을 얻은 사람들이며, 그중 다수는 최신 기술이 자신을 집어삼키려 하자 비로소 분노함. 수많은 이들에게 디지털 암흑시대는 20년 전에 시작됨.
이 논의는 창작자로서의 소신과 오픈소스·Creative Commons 사이의 긴장을 건드림. 공공의 공유 자산에 기여하거나 재미로 소프트웨어를 공개하던 태도에서, 오픈소스 라이선스가 붙어 있어도 창작자가 독점적으로 통제하는 예술 작품처럼 취급하는 쪽으로 이동함.
자유 소프트웨어의 네 가지 자유 중 제0자유인 모든 목적의 사용 자유는 ‘AI 금지’ 같은 라이선스를 허용하지 않음. 설령 허용하더라도, 학습은 복제가 아니므로 저작권자의 허락이 필요 없다는 것이 주류 논리임. 모두가 동의하지는 않지만, 이런 논리가 사회적으로 받아들여지면 기존 코드를 LLM에 읽혀 재구현하는 더 직접적인 복제도 용인되기 쉬워짐. 때로는 대놓고, 때로는 ‘클린룸’이라는 명분으로 이루어짐.
기존 방식대로 하려면 근본적으로 달라지는 것은 없음. 여전히 공개하고 사용할 수 있고, 프로젝트에 참여할 때 AI 기여나 사용을 금지할 수도 있음. 다만 AI는 숨은 전제를 드러냄. 명성·포트폴리오·타인의 인정을 위해 오픈소스를 하는 이들에게, 소프트웨어 제작이 고도의 구현 기술보다 좋은 결과를 유도하는 요청 작성에 가까워지는 변화는 위협임.
기존 진입장벽 없이 제작이 쉬워지면 멋진 것들이 더 많이 나올 테니 비관할 이유는 크지 않음. 법적 독점권으로 보상받지 않아도 사람은 스스로 창작함. 누구나 원하는 소프트웨어를 쉽게 만들고 고칠 수 있다면, Stallman도 자신의 프린터 드라이버를 고칠 수 있었을 것이므로 어떤 의미에서는 그의 꿈을 실현함.
이것이 개방성을 줄인다고 보기는 어려움. 오히려 저작권 자체가 개방성을 줄이며, 모두가 이를 무시하기 시작하면 소프트웨어는 다시 공동의 공유 자산으로 돌아가게 됨.
모든 목적의 사용 자유가 왜 AI 학습을 제외한 모든 사용의 자유가 될 수 없는지 모르겠음. 저작권은 자기 작업물에 대한 통제에 기반하므로, 라이선스를 원하는 조건으로 조정하는 것도 분명 가능한 선택임.
AI 자동 생성 콘텐츠
본 콘텐츠는 GeekNews의 원문을 AI가 자동으로 요약·번역·분석한 것입니다. 원 저작권은 원저작자에게 있으며, 정확한 내용은 반드시 원문을 확인해 주세요.
원문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