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AI에게 있고 우리에게 없는 것, 우리에게 있고 AI에게 없는 것
요약
AI의 본질을 '방대한 전례를 압축하여 다음 문맥을 정밀하게 예측하는 존재'로 정의하며, AI와 인간의 역할 차이를 분석합니다. AI가 대체할 수 없는 영역과 인간이 지켜야 할 정체성에 대해 통찰을 제공합니다.
핵심 포인트
- AI는 의지나 목적 없이 확률적으로 다음 문맥을 맞히는 도구임
- AI는 출력을 생성할 수 있지만, 그 출력을 채택하고 책임지는 것은 인간의 영역임
- AI와 승부하는 장소를 틀리지 않는 것이 엔지니어의 생존 전략임
- 기술적 벤치마크보다 현장에서의 체감과 변화하는 업무 방식에 주목해야 함
얼마 전, 사내에서 이런 말을 들었습니다.
"그래서 결국 AI가 우리 업무에서 무엇을 해준다는 건가요?"
"우리 코드를 AI에 학습시켜도 괜찮은 건가요? 애초에 뭐가 그렇게 대단하다는 거죠?"
제가 근무하고 있는 곳은 솔직히 말해서 AI에 문외한인 회사입니다. ChatGPT가 세상에 나온 지 4년째에 접어들고, 엔지니어의 수중에 AI 코딩 툴이 당연하게 자리 잡은 지 2년 정도 지났지만, 사내의 분위기는 여전히 "뭔가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수준에 머물러 있습니다.
그런 상태의 상대에게 AI를 설명할 기회가 있었습니다. 설명을 위해 자료를 만들면서, 저는 제 머릿속을 정리하고 있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현 상태의 AI는 결국 무엇을 하고 있는가. 앞으로 어느 영역이 AI로 대체되고, 어디가 남을 것인가. 설명하는 쪽이 가장 진지하게 고민하게 되었습니다.
이 기사에서는 그때 제가 이야기했던 내용과, 이야기하면서 스스로 납득하게 된 결론을 적습니다. 읽고 났을 때 다음의 3가지가 손에 남도록 작성했습니다.
- 현 상태의 AI가 "하고 있는 것"을 비엔지니어에게도 설명할 수 있는 한 문장으로 압축한 것
- 인간이 AI를 이길 수 없는 영역의 리스트 (깨끗하게 포기하는 편이 빠른 곳)
- 인간으로 대체되지 않는 영역의 리스트와, 그것이 남는 단 하나의 정체
기술 기사라기보다는 포엠(Poem)입니다. 코드도 거의 나오지 않습니다. 그럼에도 내일의 나의 일하는 방식이 조금 변할 이야기라고 생각하며 쓰고 있습니다.
본 기사는 2026년 7월 시점의 저의 관측과 체감에 기반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 벤치마크 이야기가 아니라, 현장에서 사람들에게 AI를 설명한 경험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 AI에 문외한인 상사·동료·고객에게 AI를 설명하는 역할을 맡게 된 사람
- "내 업무를 AI에게 빼앗기는 것 아닐까"라고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본 적이 있는 엔지니어
- AI 코딩 툴은 사용하고 있지만, 자신의 직능의 윤곽이 모호해진 사람
- 포엠을 읽을 마음의 여유가 있는 사람
완독 예상 시간은 10분 정도입니다.
설명 서두에서 가장 먼저 한 것은 연표 두 개를 나란히 놓는 것이었습니다. 한쪽은 세상의 연표, 다른 한쪽은 우리 회사의 연표입니다.
| 시기 | 세상 | 우리 회사 |
|---|---|---|
| 2022년 후반 | 대화형 AI가 공개되어 일반적으로 폭발적으로 확산됨 | "뭔가 유행하고 있는 것 같다" |
| ... |
이 표를 내놓은 순간, 회의실의 공기가 바뀌었습니다. 기술 설명보다 "뒤처지고 있다"는 체감이 사람을 움직인다는 것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본론으로 들어갑니다. "그렇다면, 그 뒤처지고 있는 AI라는 녀석은 도대체 무엇을 하고 있는가".
저는 다음의 한 문장으로 설명했습니다.
AI는 인류가 쌓아온 방대한 전례를 압축해서 기억하고 있으며, "이 문맥이라면 다음은 이렇게 올 것이다"를 엄청난 정밀도로 계속 맞히고 있다.
거기에 의지는 없습니다. 목적도 없습니다. 그저 "맞히러 가고 있을" 뿐입니다.
그렇기에 AI의 장점과 단점은 깔끔하게 설명할 수 있습니다.
포인트는 그림의 맨 아래입니다. AI는 출력까지는 담당할 수 있지만, "그 출력을 채택한다"는 한 단계는 구조상 아무래도 담당할 수 없습니다. 이 부분이 후반부 이야기의 전부입니다.
사내 설명에서는 이 비유를 사용했습니다.
AI는 전 세계의 기보를 암기한 관전객입니다. 다음 한 수를 누구보다 빠르게, 누구보다 정확하게 말할 수 있습니다. 다만, 그 한 수를 두는 것은 어디까지나 대국자이며, 졌을 때 고개를 숙이는 것도 대국자입니다. 관전객은 자리에서 일어나면 끝입니다.
이 비유는 생각보다 잘 먹혔습니다. "그럼 우리 신입들은 AI를 이길 수 없다는 건가요?"라는 질문을 받아서 솔직하게 대답했습니다. 이길 수 없습니다. 적어도, 승부하는 장소를 틀린다면.
이곳은 깨끗하게 포기하는 편이 좋다고 설명한 영역입니다. 차례대로 나열하겠습니다.
가장 먼저 꼽은 것이 이것입니다. 사양이 명확하게 결정되어 있어 "이제 쓰기만 하면 되는" 상태가 된 코드는, 이제 인간이 쓸 이유가 거의 없습니다.
CRUD 엔드포인트, DTO 정의, 유효성 검사(Validation), 보일러플레이트(Boilerplate). 이런 종류의 코드는 "전례가 전 세계에 무한히 존재"하기 때문에 AI가 가장 잘하는 영역입니다.
// "User 모델에 대한 CRUD API를 기존 Post API와 같은 스타일로 만들어줘"
// → 인간이 30분 걸려 쓸 것을 십수 초 만에 만들어낸다. 게다가 기존 스타일과 일치한다.
export async function createUser(input: CreateUserInput): Promise<User> {
...
인간 측에 있는 것은 손가락을 움직이는 속도와, 타이핑 실수와, 집중력의 한계입니다. 승산이 없습니다.
3시간 동안 쉬지 않고 단조로운 리팩터링 (Refactoring)을 해도, AI의 품질은 첫 번째 줄과 마지막 줄에서 변하지 않습니다. 인간은 변합니다. 저는 변합니다. 저녁의 내가 작성한 코드는 아침의 내가 작성한 코드보다 명확하게 품질이 떨어집니다.
"질리지 않는다"는 것은 생각보다 강력한 능력입니다.
5년 전에 내가 작성한 코드의 의도를 저는 기억하지 못합니다. 문서도 작성해두지 않았습니다. 반면 AI는 프레임워크의 사소한 옵션부터 작년의 파괴적 변경 (Breaking Changes)에 따른 이행 절차까지, 물어보기만 하면 순식간에 내놓습니다.
"알고 있느냐 모르느냐"로 차이가 나는 일은 이제 끝났습니다. 이는 인간 측에게 사실 희소식입니다.
"이 설계에 대해 3가지 안을 내줘"라고 하면 3가지 안이 나옵니다. 10가지 안도 나옵니다. 인간은 1안을 내는 데 30분이 걸리고, 게다가 1안에 애착이 생겨버려서 2안의 질이 떨어집니다.
선택지를 나열하는 작업은 AI가 압도적으로 공정하고 빠릅니다.
이것은 설명회에서 가장 반응이 좋았던 이야기입니다.
AI는 몇 번을 반려해도 낙담하지 않습니다. "이거 전부 다시 써줘"라고 5번 말해도, 6번째에도 똑같은 텐션으로 내놓습니다. "말투가 좀 심했나"라고 눈치를 볼 필요도 없습니다.
인간을 상대로 하는 리뷰에는 기술적인 비용과는 별도로, 심리적인 비용이 따릅니다. AI에게는 그것이 제로입니다. 이 차이는 팀의 시행 횟수에 직결됩니다.
회의록 요약, 영어 문서 독해, 릴리스 노트 (Release Notes), 테스트 케이스 (Test Case) 도출, 코드 주석. "형식이 정해져 있고, 양이 많고, 귀찮은" 것들은 전부 해당됩니다.
| 영역 | 이길 수 없는 이유 |
|---|---|
| 단순 구현·코딩 | 전례가 무수히 많으며, 정답이 유일함에 가까움 |
| ... |
한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정답이 정해져 있고, 나머지는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일"은 전부 AI에게 집니다.
그리고 이것을 깨달았을 때 제가 느낀 감정은 사실 초조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럼 나는 지금까지 무엇을 해온 인간인가?"라는, 조금 더 정적인 질문이었습니다.
자, 이제 본론입니다. 설명회에서도 가장 시간을 많이 할애한 부분입니다.
흔히 "AI는 책임을 질 수 없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처음에는 이것을 편리한 상투어 정도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사내 설명회를 준비하면서, 이 한 문장이 모든 경계선을 긋고 있다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책임이란 무엇일까요. 저는 이렇게 정의했습니다.
책임이란, 틀렸을 때 고통을 감내하는 주체가 존재하는 것.
여기가 핵심입니다. AI는 사과문을 인류에서 가장 능숙하게 쓸 수 있습니다. 진심 어린 사과문을 3초 만에 3가지 안으로 내놓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AI의 사과에는 고통이 없습니다.
- 감봉당하지 않습니다.
- 신용을 잃지 않습니다.
- 다음 프로젝트를 놓치지 않습니다.
- 밤에 잠을 못 이루지도 않습니다.
고통을 느끼지 않는 주체는 책임을 졌다고 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AI는 아무리 똑똑해져도 "사과는 할 수 있지만, 책임은 질 수 없다"는 구조를 가집니다. 이는 정확도가 높아져도 해결되지 않습니다. 능력의 문제가 아니라 입장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AI의 정확도가 높아지면 책임도 맡길 수 있게 될 것"이라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이는 틀렸습니다. 정확도 100%의 AI라도 책임은 질 수 없습니다. 책임이란 정확함의 문제가 아니라, 귀속처의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설계란 무엇을 하는 작업일까요. 그림을 그리는 것도, 클래스 이름을 결정하는 것도 아닙니다.
설계란, 무수한 트레이드오프 (Trade-off)에 대해 "이것을 버리겠다"라고 결정하는 작업입니다.
- 속도를 택할 것인가, 가독성을 택할 것인가
- 현재의 요구사항에 최적화할 것인가, 3년 후의 확장성을 대비할 것인가
- 자체 제작할 것인가, SaaS를 이용할 것인가
AI는 이 세 가지 선택지를 깔끔하게 나열하고, 장단점을 표로 만들어 줍니다. 그것은 정말 훌륭합니다. 하지만, "그래서, 어느 쪽으로 할 건데?"라는 질문은 되돌려줍니다.
왜냐하면, 그 선택이 3년 후에 대폭발했을 때 고통받는 것은 선택한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선택이란 책임의 다른 이름이며, 책임을 질 수 없는 주체는 선택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설계는 남습니다. 정확히 말하면, AI의 등장으로 설계의 "작업"은 줄어들고, 설계의 "결단"만이 농축되어 남습니다.
이것도 같은 이유입니다.
고객과의 협상에서 하는 일은 요구사항을 듣는 것이 아닙니다. 요구사항을 듣기만 한다면 AI가 훨씬 더 능숙하게 히어링 시트 (Hearing Sheet)를 만들 수 있습니다.
협상에서 하는 일은, "할 수 있습니다", "할 수 없습니다", "그 부분은 양보할 수 없습니다"라고 단언하며, 그 말에 자신의 회사의 신용을 거는 것입니다.
고객이 정말로 사고 있는 것은 기능이 아니라, "이 사람이 말하는 것이라면 괜찮을 것이다"라는 담보입니다. 담보를 제공할 수 있는 것은 잃을 것이 있는 주체뿐입니다. AI에게는 잃을 것이 없습니다.
더 나아가 말하자면, 고객은 종종 정말로 원하는 것을 말로 표현하지 못합니다. "검색을 빠르게 해달라"는 요구의 이면에는 "상사에게 보고할 자료가 내일 아침까지 필요하다"는 속뜻이 숨겨져 있습니다. 이 번역은 상대의 안색과 침묵, 그리고 다음 주 회의의 분위기를 읽는 작업입니다. 이는 로그에 남지 않는 정보로부터만 얻을 수 있습니다.
제가 가장 인간적이라고 생각하는 업무는 바로 이것입니다.
AI에게 "〇〇을 만들어줘"라고 하면 만듭니다. 반드시 만듭니다. "그거, 만들 필요가 있나요?"라고는 먼저 말하지 않습니다.
반면, 우수한 엔지니어가 가장 가치를 발휘하는 순간은 "그 기능은 기존의 것으로 대체할 수 있으니 만들지 않는 편이 좋습니다"라고 말하는 순간이기도 합니다. 만들지 않은 코드는 버그를 일으키지 않으며, 유지보수 비용(Maintenance Cost)도 제로입니다.
AI는 '구현하지 않는다'라는 선택지를 제시하는 것에 구조적으로 서툽니다. 요청받은 것에 응답하는 것이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구 그 자체를 의심하는 것은 책임을 지는 쪽의 특권입니다.
3개월 후에 내가 이 코드를 읽게 될 것이라는 공포. 반년 후에 신입이 만지게 될 것이라는 상상. "이 프로젝트는 이런 방식(Style)으로 진행해 왔다"라는 일관성을 유지하는 방식.
이것들은 전부 "미래의 누군가가 고통받을 것"에 대한 상상력에서 나옵니다. 고통을 알고 있는 주체만이 가질 수 있는 감각입니다.
| 영역 | 남는 이유 |
|---|---|
| 설계 (결단으로서의 설계) | 선택의 결과를 책임질 주체가 필요 |
| ... |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이렇습니다.
"실수했을 때 누군가가 고통받는 일"은 전부 우리에게 남습니다.
결재 도장도, 리뷰의 승인(Approve) 버튼도, 계약서의 서명도 전부 같은 일을 하고 있습니다. "이것으로 문제가 발생하면 내가 고통받겠습니다"라는 선언의 의식입니다. 이 의식에 AI는 참여할 수 없습니다.
여기까지를 바탕으로, 설명회에서는 이렇게 마무리했습니다.
| 기존 | 앞으로 |
|---|---|
| 주요 작업 | 쓰기 |
| ... |
가장 강조한 것은 마지막 줄입니다.
책임을 지기 위해서는 이해가 필요합니다. 읽을 수 없는 코드에 서명할 수는 없습니다. 내용을 이해하지 못한 설계에 대해 고객에게 설명할 수는 없습니다.
AI가 써주니까 읽는 능력이 필요 없어질 것이라는 말은 틀렸습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자신이 직접 쓰지 않은 것에 책임을 져야 하는 입장이 되기 때문에, 읽는 능력과 꿰뚫어 보는 능력의 중요도는 올라갑니다. 쓰는 양은 줄어들고, 읽는 양은 늘어납니다. 이것이 아마 앞으로 엔지니어의 실태일 것입니다.
AI의 출력을 제대로 읽지 않고 머지(Merge)하는 것은, 내용을 읽지 않고 계약서에 서명하는 것과 같습니다. 책임은 이해의 양만큼만 질 수 있습니다.
질의응답 시간에 "AI를 도입하면 일이 줄어들어서 사람이 남게 되나요?"라는 질문을 받았습니다. 저는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일은 줄어들지 않습니다. 쉬운 일이 줄어들고,
결정하는 일의 밀도가 높아지는 것입니다."
회의실이 조용해졌던 것이 기억납니다. 아마 그것은 희망찬 정적이 아니었을 것입니다. 손을 움직이고 있는 시간은 사실 도피처이기도 했기 때문입니다. 구현을 하고 있는 동안에는 결정을 내리지 않아도 되기 때문입니다.
그 도피처가 AI에 의해 빼앗기고 있습니다. **AI가 우리에게서 빼앗은 것은 업무가 아니라, "생각하지 않아도 되었던 시간"**이라고 생각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현재의 AI는 방대한 전례로부터 "다음에 올 한 수"를 계속 맞히고 있는 장치이며, 의지도 목적도 없습니다. 따라서 "정답이 정해져 있고 물량으로 밀어붙이는 일"에서는 인간이 이길 수 없습니다. 단순한 구현, 스테미나, 지식량, 선택지의 나열, 정형화된 문서는 포기해도 좋은 영역입니다.
AI에게 맡길 수 없는 것은 능력이 아니라 입장에 의해 결정됩니다. 책임이란 "실수했을 때 고통을 감내할 주체가 있는 것"이며, 고통을 느끼지 않는 주체는 아무리 똑똑해도 책임을 질 수 없습니다. 정밀도가 높아져도 이 구조는 변하지 않습니다.
따라서, 설계 (결단으로서의 설계)·고객 협상·요구의 번역·"만들지 않음"의 판단·최종 승인은 인간에게 남습니다. 그리고 남기 때문에 우리의 업무는 "쓰는 것"에서 "결정하고 책임지는 것"으로 무게중심이 옮겨지며, 읽는 능력의 중요도가 높아집니다.
AI에게 있고 우리에게 없는 것은 압도적인 물량과, 지치지 않는 몸, 그리고 감정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우리에게 있고 AI에게 없는 것은 단 하나. 잃을 것이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약점처럼 들릴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잃을 것이 있기에 우리는 선택할 수 있고, 도박을 할 수 있으며, 머리를 숙일 수 있습니다. 고통을 감내할 수 있다는 것이 우리의 유일하고도 최대의 직능이라는 것을, AI에 익숙하지 않은 회사에 AI를 설명하면서 저는 깨달았습니다.
관전자는 최선의 수를 알려줍니다. 수를 두는 것은 우리입니다.
긴 글을 끝까지 읽어주셔서 감사합니다.
「아니, 그 영역도 머지않아 AI가 가져가게 될 거야」라는 의견도, 「우리 현장은 좀 더 이렇다」라는 경험담도, 꼭 댓글로 알려주세요. 이 이야기는 아마 내년이면 답이 바뀌어 있을 것입니다. 그것을 확인하기 위해서라도, 다양한 현장의 이야기를 듣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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