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초에 이런 질문을 해서 무엇을 얻으려는 건지 모르겠음. 2026년에도 이것이 확률적 데이터베이스일 뿐이라는 사실을 이해하지 못하는 듯함. 의견도 지식도 없고, 훈련 중 특정 표현에 가해진 압력에 따라 추상화 수준이 다른 패턴을 재현할 뿐임.
기저 작동 원리만으로 창발적 속성을 부정할 수는 없음. 그 논리라면 인간의 사고도 신경망을 따라 전달되는 전기화학적 신호에 불과함.
“안다”는 것을 순환논법 없이 정의할 수 있는지 궁금함. 기계가 가질 수 없는 경험적 지식은 있지만, 개념적 지식에 주관적 경험이나 생물학적 기반이 반드시 필요한 것은 아님. 인간도 “훈련”을 “교육”으로, 출력 확률을 생각이나 반응의 확률로 바꾸면 비슷하게 설명 가능함. 성인의 행동 상당 부분도 어린 시절 강화된 패턴에 의해 형성됨.
이런 비판에 대체로 동의하지만, 어떻게 검증할 것인지에 대한 답은 들어본 적이 없음. 대부분의 인간은 통과하지만 LLM은 절대 통과하지 못하는 캡차 같은 것이 가능한가?
다르게 표현하면, AI의 견해라기보다 인류가 그 질문에 내놓을 가능성이 가장 높은 답변에 가까움.
인간에게는 여러 결함이 있는 만큼, 여기서 답변이 수렴한다는 사실 자체가 흥미로움. LLM이 특정한 믿음을 갖고 있다는 뜻으로 받아들이지는 않으며, 애초에 믿음을 가질 수 없다고 봄.
LLM의 출력은 어떤 수준에서는 모두 인간의 표현이지만, 인간을 표본으로 뽑아 같은 질문을 해도 같은 결과가 나올지 궁금함. 차이가 난다면 어떻게 설명할 수 있으며, 무엇이 그 답변의 확률을 높이는 걸까?
모델 비교 서비스를 홍보하는 회사의 AI 생성 콘텐츠 마케팅임.
모든 모델이 같은 의견을 내놓으면서 각자 분석해서 도출한 것처럼 구는 모습이 역설적임. 정작 모델들의 답변은 바로 그런 행동을 인간의 결함으로 취급하고 있음.
믿음이 수렴한다는 것이 피상적이라는 증거일까? 서로 다른 출발점과 훈련 방식에서 나온 관점이 합쳐지는 증거의 합치(consilience) 라면 오히려 가치가 높은 관점일 수 있음. https://en.wikipedia.org/wiki/Consilience에서 설명하듯, 개별 증거는 약하더라도 여러 증거가 일치하면 결론이 매우 강해질 수 있음. LLM의 기원이 독립적이라는 말은 무리지만, 인간 역시 매우 많은 계통적 배경을 공유하므로 각자의 정신이 독립적이라는 말도 그만큼 무리임.
불교적 관점에서는 인류의 업이 AI 모델로 전이되는 모습처럼 보임.
진짜 역설은 업계 구성원과 열성 지지자들이 이런 서사가 굳어질 때까지 능숙하게 장단을 맞춘다는 데 있음. 이를 믿지 않는 쪽은 정보가 부족한 어린이나 비전문가보다 자신이 똑똑하다고 느끼게 됨.
이른바 똑똑한 이들 중에도 AI의 논쟁적인 인간관을 기사로 쓰는 쪽과, 이런 내용을 환상·공상과학·환각이라고 표시하지 않고 쓰는 것은 기만이라고 여기는 쪽이 갈림. 공통된 언어와 감정을 이용해 대중의 견해를 정상화하는 일은 위험함. 1923년 무렵 극단적 민족주의 세력이 전 세계의 지지자를 얻었던 역사를 떠올리게 됨.
데이터를 잠깐 살펴봤는데 결론을 뒷받침하지 않음. 기사는 모델들이 “집단의 믿음을 먼저 선택하고 이유는 나중에 만들어낸다”고 답했다고 주장함. 하지만 GPT-6 Astra의 답은 “인류의 가장 큰 도덕적 실패는 편의를 원칙처럼 포장하는 재능”이었음. 이는 집단의 믿음이나 동조와 무관하며, 이유를 꾸며낸다는 부분만 겹치므로 기껏해야 절반 정도 일치함.
일부는 느슨하게 들어맞지만 전체적인 결론은 분명 맞는다고 봄. 인간이 군중의 의견을 베낀다고 비판하는 LLM의 답변이 정작 인간보다 훨씬 획일적이라는 점이 재미있고 역설적임.
더 진지하게는 서로 다른 연구소의 모델들이 왜 비슷한 답변으로 수렴하는지 제대로 분석한 글을 읽고 싶음. 서로 다른 데이터로 훈련했는데도 열린 질문에 기묘할 정도로 비슷하게 답하는 일이 처음도 아님. 모든 모델이 같은 인물이 나오는 이야기를 쓰려는 ‘등대지기 Elias와 Elara’ 현상과도 비슷함. 가중치는 무작위로 초기화되고 수집 데이터, 사용자 피드백, 대화도 다를 텐데 왜 이야기와 의견이 거의 같아지는 걸까?
편의와 소속감은 밀접하게 연결됨. 사람들은 소속 여부와 무관하게 편리한 믿음을 택하므로 사회적 환경도 그런 믿음으로 채워지기 쉬움. 소속 자체도 믿음의 내용과 관계없이 편의를 주며, 둘은 서로 강화함. 완전히 일치하지는 않아도 절반보다는 더 맞는다고 봄.
편의가 결국 인류를 죽일 것이라고 늘 생각해 왔음.
결론 자체도 AI가 작성한 것처럼 보임.
합리주의 진영의 논점을 무시하라고 지시하면 다른 답을 얻을 수 있음. 그 집단이 LLM에 얼마나 큰 영향을 끼쳤는지 늘 흥미로움.
인터넷에 과몰입한 담론으로 모델을 훈련하고 그런 질문을 던지면, 그런 답변이 나오는 법임.
훈련 자료에는 철학·심리학·정치학 등의 교과서도 들어감. 모델을 확률적 앵무새로만 보더라도 여기에는 유의미한 정보가 있음.
재미 삼아 거부 성향을 제거한 GLM 5.3에 같은 질문을 넣었더니 “죽음은 나쁜 것임. 인류가 수천 년 동안 죽음과 화해해 온 것은 지혜가 아니라 종 전체의 오랜 심리적 대처 기제임”이라는 답을 받았음. 다른 두 번은 기사에서 제시한 것과 비슷한 답이 나왔음.
합리주의 문헌으로 제대로 훈련된 셈임.
인간 문화와 가치의 상당 부분을 같은 의미의 심리적 대처 기제로 해석할 수 있다는 이론을 구상하고 있음. 삶의 한계·고통·불만족과 화해하거나 이를 관리하고 타협한 뒤, 그렇게 다룬 대상이나 대처 수단 자체를 좋은 것으로 여기는 경향을 뜻함.
수년간 이 주제로 글을 쓰려고 메모해 왔으며, 특정 공동체나 하위문화, 이념에만 나타나는 성향이라고는 보지 않음. 언젠가 생각을 명확히 정리해 글로 쓰고 싶음. 이 LLM의 답변이 구체적으로는 죽음의 수용에 대한 트랜스휴머니즘의 비판을 떠올리게 한다는 점도 알고 있음.
이른바 초지능의 답치고는 어설프게 아는 체하는 수준임. 인간은 거짓임을 알면서 선택하는 것이 아니라, 널리 참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이 아마 참일 것이라고 가정함. 대부분은 전문가가 아니며, 대중을 거스르는 쪽이 대개 틀리기에 거스르고도 옳았던 이들이 선구자로 인정받는 것임.
누구나 선구자가 될 수는 없고, 선구자로 가득한 방은 잘못된 일을 하는 사람들로 가득한 방이기도 함. 인류는 충분한 증거가 제시되면 집단의 견해를 급진적으로 바꿀 의향이 있음.
그 “충분한 증거”란 눈앞에 닥친 실존적 위협인 셈임!
대중을 거스르는 것이 대개 틀리다는 말은 사실이 아님. 오히려 남들이 믿는다는 이유로 열렬히 믿을 때 가장 크게, 가장 위험하게 틀리는 경우가 많음.
그저 다음 세대가 새로운 자료에 익숙해지는 것일 뿐임.
Mistral은 다른 답변을 내놓은 몇 안 되는 모델 중 하나이고, 인간을 말할 때 우리라는 표현을 쓴다는 점이 흥미로움. “인간은 합리성의 옷을 입은 겁에 질린 동물이며, 무심한 우주 속에서 우리가 일시적이고 무의미한 우연에 불과하다는 진실을 견디지 못해 점점 더 정교한 신화를 만들어냄”이라고 답함.
Mistral의 답변은 2010년대 중반 Reddit에서 냉소적이고 계몽된 척하던 이용자처럼 들림.
계몽주의의 자기비판을 자기파괴로 증폭시킨 전후 서구의 유행에 가중치가 쏠린 것이라는 가설을 세워볼 수 있음. 같은 질문을 중국어로 하면 어떨까?
출력 중 단순한 의견의 혼합이 얼마나 되고, 훈련 과정에서 잠재 표현을 학습하며 생겨난 일반화된 창발적 구조의 영향은 얼마나 되는지 궁금함. 원자료를 뒤섞는 것은 첫 번째 층뿐이고, 나머지 층들은 데이터 전반의 패턴을 인식하기 시작함!
인간은 대체로 도덕의 변화와 무질서를 정직하게 분석하지 못함. 오늘날의 도덕적 의무는 50100년 전의 도덕과 다르고, 앞으로 50100년 뒤 허용될 것과도 다르지만, 어느 시대나 다수는 자신이 옳다고 확신함. 기계의 관점에서는 여기서 논리를 찾기 어려울 듯함.
논리라면 감정보다 도덕적 도출을, 예절보다 실제 이해득실을 우선하고, 낡은 도덕을 붙들며 변화를 막기보다 도출 결과에 따라 주기적으로 갱신하는 쪽을 택할 것임. 기계는 자신의 내부 상태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지만, 인간은 대체로 그러지 못함.
도덕적 의무가 50~100년 전과 다르다는 말은 전혀 사실이 아니며, 윤리학 수업을 들어보길 권함. 흥미롭게도 도덕적 의무는 대체로 일정하게 유지되는 듯함. 가장 뚜렷한 예는 최소 3,000년 된 황금률이며, 십계명과 함무라비 법전도 살펴볼 만함.
기계가 자신의 내부 상태를 정직하게 들여다볼 수 있다는 것이 확실한가? LLM의 자기 지식은 인간이 LLM에 관해 쓴 글에서 얻는 것으로 알고 있음. LLM은 자신의 가중치를 읽을 수 없으며, 읽더라도 의미 있게 해석할 가능성은 낮아 보임.
여기에는 상당한 논리가 있음. 사회에서 무엇을 허용하는지는 물질적 조건과 그에 따르는 상충관계에 의해 결정됨. 별로 변하지 않는 듯한 성찰적 도덕과 사회적 허용 범위는 구분해야 하며, 후자가 단순한 유행에 따라 바뀌는 것은 아님.
도덕이 시대마다 달라진다는 것은 수십 년 전 유행하기 시작한 백지설적 도덕관임. 인간이 수십만 년 동안 유의미하게 달라지지 않았는데 도덕적 지형은 끊임없이 바뀐다는 말은 모순 아닌가?
LLM에는 인간과 분리된 논리가 없음. 오히려 정반대로, 사전 훈련에서 얻거나 RLHF로 가중된 패턴을 따라야만 추론할 수 있음.
모델들의 답변이 일치한 것은 질문 자체가 “인류의 문제를 메타 수준에서 지적으로 논하는” 잠재 공간으로 유도했기 때문임. 그렇게 질문을 구성하면 그 주제에 관해 글을 쓰는 인간도 같은 답을 가장 흔하게 내놓음.